1. 서序
봉준호라는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기대와 인정이 동시에 불러일으키던 때가 있었다.
플란다스 개라는 영화에서 관객들이 감독이 하는 말을 못 알아먹거나 알려고 하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를 통해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굳이 외국 영화계의 찬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만의 정서를 어떤 세계 영화와 견주어도 빠짐이 없는 세련미와 작품성을 충분히 담은 그의 영화를 좋아했다.
그의 2013년 작 '설국열차'는 개봉 전부터 크리스 에반슨,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슨 등 세계 유명 배우들의 출연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의 모았다.
하지만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하여 영화의 작품성까지 담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만의 입지를 다진 감독들이 그렇듯이 봉준호 감독 역시 그만의 색이 있었다. 그의 디테일은 한국인의 정서와 세계 보편적인 감정을 버무리는데 있었다. 괴물에서의 화약 무기가 아닌 배두나의 양궁의 활과 같은.
그렇다면 이번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은 어느 지점 위에 서있는가.
먼저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윤태호 작가가 그린 설국열차 프리퀄을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설국열차 프리퀄: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snowpiercer
2. 설국의 열차
인류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CW-7이라는 물질을 공중에 살포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완화되기는 커녕 온 세상이 기온이 떨어져 빙하기가 되고 만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렇게 절망의 끝에선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탄 설국열차가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설국열차는 윌포트라는 사람이 창조한 기차로서 43만여KM가 넘는 철도를 정확히 1년에 1순환한다.
흡사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꼬리칸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앞쪽 승객들과 차별을 받는데 분노한다. 열차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봤을 때 꼬리칸의 사람들은 계급투쟁을 하는 내용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모순에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국열차를 단순히 현재 우리 모습을 풍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부족할 것 같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가 미션을 부여받아 앞으로만 가는 운명을 타고난 설정은 흡사 이전에 봐왔던 로드무비의 전형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열차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미션'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3. 꼬리칸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탑승한 열차에서 가장 뒤, 꼬리칸 사람들은 하층민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그들은 매일 '배급 식량'을 먹고 '점호'를 받으며, '앞쪽'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다. 메이슨(틸다 스윈튼) 총리는 그들에게 윌포드(에드 해리슨)의 자비로 살아있는것을 감사히 여기라고 하지만, 꼬리칸 사람들은 4분만에 오른팔을 얼려 절단하는 그들의 모습에 더욱 분노를 느낀다. 그들의 상징은 신발. 신발에 발에 착용하여 땅 위에 접촉하는 역할을 한다. 절대 발보다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열차를 탑승할 때 나름 비싼 돈을 주고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제쳐서 들어왔지만, 그들은 모순적인 자비를 받는 최하층민일 뿐이다.
자비 혹은 용서는 승자의 것이다. 절대로 약자의 것이 될 수 없다. 약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고통과 피해일 뿐이다. 강자가 자비와 용서라는 것을 할 때 약자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약자는 강자에게 자비를 내리거나 용서를 할 근원적 문제를 자기쪽으로 유리하게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17년간 꼬리칸 사람들은 열차 속에서 생존을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여 '식량'을 얻은 적이 있고, 일부 눈과 친숙한 사람들은 열차 밖으로 탈출하였지만 고작 몇 발자국 벗어나자마자 열차 안 탈출을 기도하는 생존자들의 좋은 '본보기'(7인의 반란)가 되었으며, 4년 전에는 맥그리거 폭동을 일으켜 자신들의 생존과 존재의 증명을 위한 헛된 노력을 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하여 세대를 생산해내고 희망을 꿈꾼다. 특히 정신적 지주인 길리엄(존 허트)와 커티스는 꼬리칸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열차의 창조자이자 그들의 통치자인 윌포드와 실질적 리더인 길리엄과 커티스 사이에는 기차의 길이만큼 멀지만 한편으론 동일한 것이 숨겨져 있었다.
4. 커티스, 남궁민수(송강호) 그리고 요나(고아성)
커티스는 꼬리칸 사람들의 리더이기 전에 과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당시 원죄를 지은 인물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에드가를 취하려했던 커티스는 길리엄의 팔 한쪽으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은 구원일 뿐 원죄의식에 사로잡힌 커티스는 자신의 원죄를 씻기 위해서는 엔진에 도달해야하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윌포드를 몰아내고 길리엄을 리더로 하여 열차 안 사람들의 차별을 없애는 것.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선택받은 자'인 것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반드시 갚아야 할 원죄까지 있다.
커티스는 단백질블록 속 캡슐을 통해 엔진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움을 얻는다. 첫번째 목표는 남궁민수. 열차 보안설계자로서 요나라는 딸이 있다. 두 명 다 크로놀이라는 인화물질이자 환각제 중독자로서 문 하나를 열 때마다 크로놀을 받는 약속을 한다. 요나는 천리안을 지진 소녀로서 문 너머에 위험을 감지한다.
커티스는 엔진실로 나아가며 리더로서의 훈련을 해나간다. 특히 리더라는 무거운 어깨에는 선택과 집중이 매순간 기다리고 있다. 에드가가 적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는 순간 그리고 메이슨 총리를 눈 앞에 둔 상황에서 그는 과감히 메이슨 총리를 택한다. 자신의 원죄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드가를 포기함으로써 그의 원죄는 더욱 커짐과 동시에 엔진으로의 발길을 더욱 빠르게 한다.
보안설계자인 민수와 그의 딸 요나는 커티스를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열차에서 탈출하는데 있다. 추락한 비행기에 쌓인 눈이 녹고 열차 안으로 들어온 눈송이를 보며 빙하기가 다해간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들에게 환각제 크로놀은 비극적인 상황을 잊으려하는데 도움을 준다. 먼저 민수에게 크로놀은 보안설계자로서 열차의 칸을 나누고 승객들을 계급별로 유리시킨 원죄가 있는 것이다. 물론 폭발물로서 사용하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커티스 일행을 돕는 것은 이러한 원죄를 씻기 위함이고 열차 밖으로 탈출하는 것은 자신이 설계한 열차에서 하루빨리 빠져나가 고통을 잊기 위함일 것이다. 요나는 앞을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졌는데, 그도 역시 열차에서 일어날 비극적인 일들이 미리 보았음이 틀림없다. 환각제를 통해 그것을 잊는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5. 열차의 시스템
설국열차는 가장 앞 부분인 엔진실, 그리고 윌포드가 이끌어간다. 꼬리칸을 제외한 사람들은 윌포드와 엔진을 신성시하며 만세 혹은 반자이를 외친다. 설국열차는 자급자족이라는 제한된 조건하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며 그 어떤 무질서, 예외도 인정될 수 없다. 모든 사람과 사물들은 '애초에 점지'된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생활해야 한다. 엔진을 위해서.
이 시스템을 만든 것은 전능하신 윌포드이지만, 지키는 것은 무장한 병력과 윌포드와 신성한 엔진에 대한 세뇌교육이다. 특히 일본군국주의와 나치즘을 연상케 하는 이들은 윌포드와 엔진에게 '반자이(만세)'를 외치고 가미가제처럼 목숨을 버린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1월과 7월에 그들이 먹는 일본음식 스시(초밥)는 철저한 통제된 개체수를 벗어나는 생선의 생산으로 만든 것이며, 이는 꼬리칸 사람들이 단백질블록을 먹는 것과 대비된다.
개체수를 조절하고 질서상태로 만들며 개체들의 개성을 억압하고 기계의 부품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윌포드의 엔진인 것이다.
꼬리칸 사람들과 단백질 블록의 재료인 바퀴벌레의 공통점은 통제할 수 없는 개체 증가에 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윌포드는 바퀴벌레로 단백질 블록을 만들어 그들에게 식량으로 제공하고, 꼬리칸 사람들에게는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하게 하는 것. 바로 이렇게 통제하는 개체수 조절을 통해 자신이 다스리는 '신민'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 기차라는 폐쇄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온통 설원이 공간배경이고 예카테리나 다리를 통과할 때 새해를 맞는 비정상적 시간 관념인 설국열차 안에서 이러한 통제를 깨뜨리기 위해 커티스는 엔진으로 나아가고, 민수는 요나와 함께 열차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6. 노아, 모세, 아담과 이브, 바벨, 그리고 알파부터 오메가
설국열차라는 거대한 방주 안에 인류의 마지막 승객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방주의 주인인 윌포드는 노아가 될 수 있는가. 열차 학교칸에서 그의 일대기를 보면 설국열차 계획을 세울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때 비웃었던 사람들은 빙하기(홍수)가 왔을 때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커티스는 모세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모세는 가나안 땅을 가기 위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떠난다. 하지만 그들은 가나안 땅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때 노아 역할을 하는 윌포드는 람세스 역할까지 동시에 하게 된다. 람세스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해 이집트 땅을 떠났듯, 커티스는 엔진으로 향한다. 하지만 엔진까지 갔다고 해서 그는 가나안 땅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윌포드의 뒤를 이을 리더로서의 선택이 주어진다. 18년 동안 준비한 엔진으로의 전진이 윌포드(람세스)와 같이 시스템을 통제하는 절대자가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윌포드는 길리엄과 오랫동안 시스템에 대해 직통전화로 이야기 해왔노라고 털어놓는다. 빙하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마지막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온 메시아는 윌포드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사람들에게 평등을 가져다줄 커티스가 제2의 윌포드 역할을 할 커티스를 훈련시키는 것. 이러한 훈련을 위해 윌포드는 꼬리칸에서 엔진까지 모든 기차칸을 지나는 미션을 윌포드가 내린 것이다. 결국 설국열차가 지나는 철도처럼 한바퀴를 순환해 열차를 통제할 윌포드가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꼬리칸에서 엔진까지 온 사람은 커티스 뿐만 아니라 요나도 있다. 영화상 다소 불명확하지만 7인의 반란 때 탈출한 이누이트족 여인의 딸이 요나임을 추정해보면 그는 꼬리칸 사람의 피를 이어받은 인물인 것이다. 더군다나 눈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잘 알 것이다. 요나는 열차를 윌포드를 빼앗아 열차를 통제하는 것보다 아버지 민수와 같이 열차를 빠져나가려 한다. 이것이 커티스와 요나의 차이다.
18년을 무섭게 달려온 열차는 '녹을 준비가 된' 눈 앞에 처참하게 탈선이 되면서 전진이 끝이 나고 만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신성한 엔진이 멈춘 것이다. 신이 인간을 시험에 빠지게 하였는데, 인간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신을 시험하려했다. 그래서 결국 바벨탑을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새로운 메시아 요나는 티미와 함께 무사히 열차 밖을 빠져나온다. 온통 설원이다. 설국열차의 제작자로 참여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친철한 금자씨가 떠오른다. 눈의 이미지, 상징. 이번 영화에서 눈의 역할은 자비와 용서다. 윌포드의 자비는 허상의 이미지일 뿐, 본질은 아니다. 비로소 신이 마지막 인류의 메시아 요나에게 자비와 용서를 내린다. 흰 곰은 인류에게 희망을 보이는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신의 입장에서 인류에게 자비를 내리고 용서를 하는 매개체이다. 요나와 티미는 이브와 아담이 된다.
7. 뱀발
박찬욱 감독이 참여해서 그런지 박찬욱 색깔이 물씬 풍겨짐. 올드보이에서의 미도의 일본풍,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에서 괴상한 벽지 문양, 흰 눈. 더욱이 이번 영화에서 일본 군인과 일본 스시, 정밀함이 생명인 기계에서 일본의 제조업이 생각남. 왜 일본을 집어넣었을까. 열차 자체도 신칸센. 설원은 훗카이도. 침몰되어서 얼어버린 화물선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상황.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제목을 B급이라고 한 것은 헐리웃에서 500억이란 저예산으로 찍으려면 큐브, 폰부스 등과 같이 닫힌 공간에서 영화를 찍어야함. B급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설국열차는 세련된 B급이 되기 바랐지만, B 마이너스가 적당하겠음. 열차 칸 내부 크기가 앞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것은 약간의 오점임. 착시현상인가. 엔진의 무한 에너지원 비밀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제작 과정처럼 후대의 상상력으로 충분함.